마젠타에서, 블랙에서: 선명함의 삶
한 송이 꽃을 들고 지나가다—사람이, 시간이, 기억이. 삶이란 밝음, 말하자면 양지에 어둠이 가끔 교차하다가 어느새 서서히 저물어 든다기보다, 어쩌면 채도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그때마다 다른 선명함을 뿜거나 잃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삶을 지내다 보면 눈에 띄거나 덜 띄는 차이가 있을 뿐,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무언가의 그림자에 가려진 것도 아니며, 어둠이 전체를 집어삼킨 것도 아니다. 명도, 이 밝고 어두움이 긍정성과 부정성으로 각각 나뉘는 한편, 채도는 그렇지 않다. 삶의 현재와 삶의 끝 또한 채도의 높고 낮음처럼 수평적이지 않을까. 일상 속에 선명히 보이는 것과 덜 보이는 것, 나뉘지 않고 서로 이어져 있는 상태에 만들어진 높낮이가 여기—우리 삶에, 미세한 요동과 함께 있다. ... Read more
만개한 순간
인간은 신체 경험을 통해 사유하고 감각한다. 김나우는 사물을 감각할 때, 여성으로서의 신체 경험을 투사할 때가 있다. 특히 조개껍데기의 조개 살을 담는 움푹 파인 형태에서는 자궁을, 꽃의 길게 뻗은 암술과 수술 형태에서는 인간의 생식기를 연상했다. 김나우는 이 이미지들로부터 유약한 존재임에도 뿜어내는 강한 생명력과 에너지를 느꼈다. 이러한 감상을 바탕으로 작품에서 조개껍데기와 꽃을 의인화의 대상으로 보거나 현실과는 다른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박동하는 생명력을 형상화한다. ... Read more